유학의 흐름과 교회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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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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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儒學)의 흐름과 교회의 역사 1
교회에서 교인들과 더불어 생활을 하면서 항상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도들의 신앙적인 차이가 지역별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이런 차이는 지역별로 복음화율의 편차까지 나타나게 했다. 더 나아가 복음 수용 이후에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분들의 지역에서도 그 차이를 나타낸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영남지역의 복음화율은 인구대비 10-13%의 비율이지만 호남지역은 19-26%의 비율로 지역별 복음화율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순교지 역시 다른 지역에 비해서 호남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 혹자는 이런 결과가 6.25전쟁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공산군 점령이 부산을 제외하고 모든 지역에서 있었다. 따라서 순교지 편중에 대한 다른 이유를 검토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을 논하면서 선교사가 전해준 복음의 씨앗만을 말하였다. 즉 그 복음이 수용된 토양의 차이를 검토하지 않고 복음화율을 고찰해 왔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복음의 씨앗은 그 토양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토양과 관련하여, 기고자는 먼저 유학에 주목하였고 더 나아가 이 유학을 지역별로 엄밀하게 구분하여 검토하였다. 기고자의 졸저인 “유학에서 찾은 교회의 성장”에서 그 차이와 이유을 밝혔는데 본 지면에서는 다섯 번으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한다.
1. 관혼상제에 따른 지역적 차이
2. 내한 선교부의 성향과 선교방법
3. 1950년대 교단 분열로 본 영호남
4. 순교지로 본 호남
5. 3대 장로로 본 영남
첫 번째로 유학의 관혼상제에 따른 지역적 차이를 보려고 한다.
유학에서 심성문제는 사단(仁義禮智) 칠정(喜怒哀樂愛惡慾)으로 사람의 내면적인 기질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사단 칠정은 개념적이고 논리적으로 리발(理發)과 기발(氣發)의 존재로 구분하였다. 퇴계가 말하는 사단은 순수하게 선한 것으로 선악이 결정되지 않은 칠정과 섞어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퇴계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은 기보다는 이를 우위에 두려는 경향으로 기발을 따르는 기호학파와 충돌하였으며 후기로 갈수록 이를 중시하였다.
율곡은 이기지묘(理氣之妙)로 이와 기가 하나로 존재하기에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의 기발이승(氣發理乘)을 주장하면서 퇴계와 달리 이발이 불가하다고 하였다. 남명 조식은 13차례나 관직에 제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적 학문인 의(義)를 중시하는 입장의 남명학파가 되었다. 영남유학은 퇴계학파가 경상좌도를, 남명학파는 경상우도을 기반으로 학맥을 이루었다가 인조반정이후 남인의 퇴계학파가 중심이 되어 영남지역을 대변하고 있다. 서인의 율곡학파는 기호지역인 경기, 충청, 호남지역을 포괄하고 있지만 본란에서는 호남으로 좁혀서 보고자 한다.
유학의 지역적인 특색을 알기 위하여 깊은 내용의 전개보다는 나타난 현상을 중심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사람과의 바른 관계를 만들기 위하여 제정된 예학의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살펴보려고 한다.
관혼상제에서 관례는 소년이 성인이 되면서 사회가 그들에게 새로운 지위를 관례 의식을 행하여 사회에 참여하게 하였으나 현재는 유명무실해져 있다. 결혼식의 혼례는 전통식보다 서양식을 선호하고 있어 관례와 혼례에서 유학의 정신을 찾기 어렵다.
관례와 혼례가 있고 사람의 죽음에서 장사지낼 때까지 상례와 돌아가신 후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제례가 있다. 현대사회까지 전해져 통용하는 상례와 제례는 아직도 유학의 예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대표적인 상례문제로 조선시대 예송논쟁을 들수 있다.
조선시대의 상례문제로 2차에 걸쳐 격렬한 논쟁을 벌인 예송논쟁은 지역에 따른 정치적인 입장차이를 남인과 서인으로 명확하게 보여주었던 사건이다. 예송논쟁은 1659년 효종과 1674년 효종비가 죽은 뒤 대왕대비가 상복을 1년 입어야 하는지 3년 입어야 하는지의 문제였다.
이는 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가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혔다가 9년만에 귀국하여 죽은 뒤 적장자(嫡長子)인 석철이 있음에도 차남인 효종이 인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남인은 효종이 왕자례불동사서(王者禮不同士庶)로 종법(宗法)이 천리(天理)를 따르지만 왕자는 서민과 달라 차남이지만 장남으로 보아 3년상을 치른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서인은 종법은 천리로 차남이 왕이 되었어도 변할 수 없는 차남이기에 1년상을 주장하였다. 예송논쟁은 예학을 둘러싸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남인과 서인의 치열한 정치적인 주도권 싸움이었다.
예학에서 남인은 퇴계 이이를 중심으로 전통예학인 주자가례를 따랐다. 서인은 주자가례에서 가례집람(1599년)과 사례편람(1844년)으로 시대에 따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가례에서 남인은 주자가례를 따르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서인은 시대의 정신에 따라 가례집람, 사례편람으로 변화를 수용하였다. 가례의 일관성과 수용성의 지역적 특색이 교회에서도 자리잡고 있다.
상례와 제례는 지역적으로 절차를 다르게 지내고 있다. 상례에서는 탈관(脫棺)의 경우와 제례에서는 제사 대상자를 쓴 지방(紙榜)에서 가장 크게 대별될 수 있다. 상례에서 영남과 일부 지역에서는 하관시 탈관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하관시 탈관을 하지 않고 있다.
제례에서 지방을 쓸 때 관직이 없는 경우 영남지역은 ‘처사’(處士)를 사용하고 호남지역은 ‘학생’(學生)을 사용한다. 현재는 1969년 정부에서 허례허식 탈피를 위하여 제정한 가정의례준칙에서 채택한 학생이 보편적이지만 영남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처사를 사용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유학이 아니라 4차 산업시대로 과학의 문명에 살고 있는데 유학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말을 한다. 그러나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도 가족간에 지키는 예의범절이 있다.
예의범절은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으로 부모가 자기의 부모에게 배워 습득한 것을 자기 자녀에게 가르치면서 가정교육을 하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 사느냐 보다 부모가 어느 지역의 교육을 받았느냐로 자녀를 가르치고 있다.
지역별 차이를 언급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지역색이라는 부정의 의미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색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존재하여 성경에서도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딛1:12)라고 하지만 그 지역색을 인정하고 수용하면 부정의 의미도 달라질 것이다.
교회에서 교인들과 더불어 생활을 하면서 항상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성도들의 신앙적인 차이가 지역별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이런 차이는 지역별로 복음화율의 편차까지 나타나게 했다. 더 나아가 복음 수용 이후에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분들의 지역에서도 그 차이를 나타낸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영남지역의 복음화율은 인구대비 10-13%의 비율이지만 호남지역은 19-26%의 비율로 지역별 복음화율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순교지 역시 다른 지역에 비해서 호남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 혹자는 이런 결과가 6.25전쟁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공산군 점령이 부산을 제외하고 모든 지역에서 있었다. 따라서 순교지 편중에 대한 다른 이유를 검토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을 논하면서 선교사가 전해준 복음의 씨앗만을 말하였다. 즉 그 복음이 수용된 토양의 차이를 검토하지 않고 복음화율을 고찰해 왔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복음의 씨앗은 그 토양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토양과 관련하여, 기고자는 먼저 유학에 주목하였고 더 나아가 이 유학을 지역별로 엄밀하게 구분하여 검토하였다. 기고자의 졸저인 “유학에서 찾은 교회의 성장”에서 그 차이와 이유을 밝혔는데 본 지면에서는 다섯 번으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한다.
1. 관혼상제에 따른 지역적 차이
2. 내한 선교부의 성향과 선교방법
3. 1950년대 교단 분열로 본 영호남
4. 순교지로 본 호남
5. 3대 장로로 본 영남
첫 번째로 유학의 관혼상제에 따른 지역적 차이를 보려고 한다.
유학에서 심성문제는 사단(仁義禮智) 칠정(喜怒哀樂愛惡慾)으로 사람의 내면적인 기질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사단 칠정은 개념적이고 논리적으로 리발(理發)과 기발(氣發)의 존재로 구분하였다. 퇴계가 말하는 사단은 순수하게 선한 것으로 선악이 결정되지 않은 칠정과 섞어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퇴계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은 기보다는 이를 우위에 두려는 경향으로 기발을 따르는 기호학파와 충돌하였으며 후기로 갈수록 이를 중시하였다.
율곡은 이기지묘(理氣之妙)로 이와 기가 하나로 존재하기에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의 기발이승(氣發理乘)을 주장하면서 퇴계와 달리 이발이 불가하다고 하였다. 남명 조식은 13차례나 관직에 제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적 학문인 의(義)를 중시하는 입장의 남명학파가 되었다. 영남유학은 퇴계학파가 경상좌도를, 남명학파는 경상우도을 기반으로 학맥을 이루었다가 인조반정이후 남인의 퇴계학파가 중심이 되어 영남지역을 대변하고 있다. 서인의 율곡학파는 기호지역인 경기, 충청, 호남지역을 포괄하고 있지만 본란에서는 호남으로 좁혀서 보고자 한다.
유학의 지역적인 특색을 알기 위하여 깊은 내용의 전개보다는 나타난 현상을 중심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사람과의 바른 관계를 만들기 위하여 제정된 예학의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살펴보려고 한다.
관혼상제에서 관례는 소년이 성인이 되면서 사회가 그들에게 새로운 지위를 관례 의식을 행하여 사회에 참여하게 하였으나 현재는 유명무실해져 있다. 결혼식의 혼례는 전통식보다 서양식을 선호하고 있어 관례와 혼례에서 유학의 정신을 찾기 어렵다.
관례와 혼례가 있고 사람의 죽음에서 장사지낼 때까지 상례와 돌아가신 후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제례가 있다. 현대사회까지 전해져 통용하는 상례와 제례는 아직도 유학의 예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대표적인 상례문제로 조선시대 예송논쟁을 들수 있다.
조선시대의 상례문제로 2차에 걸쳐 격렬한 논쟁을 벌인 예송논쟁은 지역에 따른 정치적인 입장차이를 남인과 서인으로 명확하게 보여주었던 사건이다. 예송논쟁은 1659년 효종과 1674년 효종비가 죽은 뒤 대왕대비가 상복을 1년 입어야 하는지 3년 입어야 하는지의 문제였다.
이는 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가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혔다가 9년만에 귀국하여 죽은 뒤 적장자(嫡長子)인 석철이 있음에도 차남인 효종이 인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남인은 효종이 왕자례불동사서(王者禮不同士庶)로 종법(宗法)이 천리(天理)를 따르지만 왕자는 서민과 달라 차남이지만 장남으로 보아 3년상을 치른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서인은 종법은 천리로 차남이 왕이 되었어도 변할 수 없는 차남이기에 1년상을 주장하였다. 예송논쟁은 예학을 둘러싸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남인과 서인의 치열한 정치적인 주도권 싸움이었다.
예학에서 남인은 퇴계 이이를 중심으로 전통예학인 주자가례를 따랐다. 서인은 주자가례에서 가례집람(1599년)과 사례편람(1844년)으로 시대에 따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가례에서 남인은 주자가례를 따르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서인은 시대의 정신에 따라 가례집람, 사례편람으로 변화를 수용하였다. 가례의 일관성과 수용성의 지역적 특색이 교회에서도 자리잡고 있다.
상례와 제례는 지역적으로 절차를 다르게 지내고 있다. 상례에서는 탈관(脫棺)의 경우와 제례에서는 제사 대상자를 쓴 지방(紙榜)에서 가장 크게 대별될 수 있다. 상례에서 영남과 일부 지역에서는 하관시 탈관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하관시 탈관을 하지 않고 있다.
제례에서 지방을 쓸 때 관직이 없는 경우 영남지역은 ‘처사’(處士)를 사용하고 호남지역은 ‘학생’(學生)을 사용한다. 현재는 1969년 정부에서 허례허식 탈피를 위하여 제정한 가정의례준칙에서 채택한 학생이 보편적이지만 영남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처사를 사용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유학이 아니라 4차 산업시대로 과학의 문명에 살고 있는데 유학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말을 한다. 그러나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도 가족간에 지키는 예의범절이 있다.
예의범절은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으로 부모가 자기의 부모에게 배워 습득한 것을 자기 자녀에게 가르치면서 가정교육을 하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 사느냐 보다 부모가 어느 지역의 교육을 받았느냐로 자녀를 가르치고 있다.
지역별 차이를 언급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지역색이라는 부정의 의미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색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존재하여 성경에서도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딛1:12)라고 하지만 그 지역색을 인정하고 수용하면 부정의 의미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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