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고린도후서 11:16-21)
관리자
2023.10.1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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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가 다시 말하노니" (고린도후서 11:16-21)
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18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21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자신이 자랑을 하지만 공로를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교인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고자 바울은 자신을 거짓 사도와 비교하며 그들의 정체성을 폭로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입증합니다.
1. 우리 자랑은?
바울을 불신하는 고린도교인에게 복음을 위한 자신의 수고와 고난에 대해 부득불 자랑한다며 을 불신하는 고린도교인들로 부득이하게 자기를 자랑할 수밖에 없는 복합적 심정을 토로합니다. 바울은 거짓사도들 자랑처럼 교회 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랑합니다.
바울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자신을 어리석은 자와 동일하게 취급하며 자신에 대한 자랑을 언급합니다. 기탄없이는 확신을 가지고 자랑해야 한다는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스스로 어리석다고 하지만 어리석음은 궁극적으로 교회와 주를 위한 어리석음입니다.
육신을 따라는 주를 따르는 것과 반대로 바울은 부득이하게 사람 중심의 가치로 자랑을 하는 것이며, 고린도교회 상황의 위급성과 심각성으로 바울은 스스로 자랑하지 않았음에도 교회를 위하여 하게 되었습니다.
2. 고린도교인들은?
너희는 너무 지혜로워서 어리석은 자까지 기쁘게 용납한다는 풍자와 조롱의 의미로 용납한다는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들어온 어리석은 자들이 말하는 것 같이 말하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들이 안달이 날 정도의 조바심으로 어리석은 자들을 자발적으로 용납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쁘게 용납했는지를 설명하며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사도들의 계락과 같을 것으로 거짓사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율법에게 예속하여 영성을 억압하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이 실제적인 노예생활하여 그리스도의 자유 복음이 노예복음으로 전락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굳게 서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며 영적인 아비로서 바울이 간절하게 전하고 있는 복음입니다.
스스로 높이는 행위는 가짜복음을 진짜 복음인 것처럼, 자기들이 참 사도인 것처럼 거짓사도들의 허풍과 자기 높임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적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자신들의 높음을 빛내주는 성직자의 망토를 걸치고 있지만 속내는 썩은 것에 점령당했기 때문입니다. 거짓사도들의 방자함을 사도적 권위로 당연하게 용인했던 고린도교인들의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3. 바울의 자랑
거짓사도들의 거친 요소가 참된 사도의 징표라면 자신은 교회에서 연약하기에 부끄럽다는 것은 어리석은 말이지만 내가 연약하다는 것은 그들의 모략하고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못하지 않다는 바울입니다. 거짓사도들이 자기들이 가진 인간적인 자랑으로 떠벌리면 자신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랑하지만 바울이 자기를 자랑하는 어리석음은 어리석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치료책이 될 수 있다는 바울입니다.
바울은 거짓사도들과 비교할 수 없는 사도로서 우월성을 강조하며 자신이 겪은 고난을 열거하는 바울처럼 우리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하여 앴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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