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12월 03일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열왕기하 19:14-19)

관리자
2023.12.03 09:52 324 0

본문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열왕기하 19:14-19)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17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18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히스기야는 신하들에게 앗수르왕 산헤립의 신하 랍사게가 모독과 항복요구에 슬퍼하며 해결을 위하여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 기도를 요청하자 남유다에 구원을 약속합니다. 재차 앗수르 왕 산헤립이 히스기야에게 편지를 보내자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이름(14-15절)
히스기야가 산헤립에게 받은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놓은 것은 모독에 대한 증오심으로 산헤립 협박편지에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펼침으로 심판 때가 이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당당함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신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다윗 후손인 히스기야가 여호와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하나님이 다윗과 언약을 맺으신 사실에 관심을 두고 해결 요청합니다. 자신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복종한다면 아무리 바벨론이 강해도 우리들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히스기야 신앙고백에는 우상과 달리 역사하시는 유일신 하나님 개념이 명확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천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산헤립의 오만함을 간과하지 않고 심판하여 건질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2. 하나님께 탄원916-18절)
귀를 기울여는 간곡한 청원의 의미가 담겨 소리가 나는 쪽으로 기울여 들으려는 것입니다. 떠서 보아 달라는 것은 눈과 귀를 동원하여 상활을 인식하듯이 산헤립의 오만함을 보시기를 원한다는 감각적인 표현은 이방신과 달리 하나님은 그 백성들과 긴밀하게 교통하시는 분이라는 인식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인격적 배려와 사역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비방은 조롱하거나 무례한 말로 비난하는 의미로 하나님을 이방우상과 동일 차원에 놓았음을 말합니다. 하나님 능력이 자신들의 군대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모욕적인 말을 심판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전쟁과 같은 무력으로 황폐케 하였던 산헤립이 하나님 섭리로 칼에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앗수르의 강함과 이방 열국에 행한 일들은 두려움을 주지만 도리어 더 간절하고 절박하게 기도합니다.
신들이 불에 던져진 것은 신들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섬기는 나라가 완전히 멸망함으로 열국 신들이 불태워진 원인은 앗수르가 위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섬기는 신이 우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산헤립이 우상들과 살아계신 하나님을 동류로 생각하고 조롱한 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교만이었습니다.

3. 하나님께 기원(19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라는 이름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의 주가 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4절에서 “당신의 하나님”은 이사야와 유다가 처한 현실의 연약함을 깊이 통감하는 간구입니다. 15절에서 “그룹들 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천하를 다스리고 게시는 초월성을 지닌 분임을 말합니다. 하나님 여호와는 자신들과 불가분의 관계이 있음을 나타내는 호칭으로 친밀감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과 유다가 처한 상황을 기도하면서 유다를 위해 적극적인 능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원하건대 이제는 시간적 흐름이 아니라 논리적 귀결로 언약백성을 구원해 달라는 간절함입니다.
하나님이 남 유다를 앗수르 손에서 구원하면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신임을 입증하는 기회로 산헤립과 하나님 대결은 과거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쌓은 단에 불을 내리는 것으로(왕상 18:37-39) 연관됩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구원 행위는 하나님 스스로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것과 긴밀한 연관으로 갈멜산에서 엘리야 기도에 응답하시고 홍해에서 모세 기도에 응답하신 것처럼(출 14:13-31)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통한 구원 역사가 오고 오는 모든 시대에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대림절을 맞이하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