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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4일 "나의 자녀들아" (갈라디아서 4:14-20)

관리자
2023.09.24 09:51 43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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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녀들아" (갈라디아서 4:14-20)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16 그런즉 2)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17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속죄로 하나님의 자녀란 명분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과거 갈라디아 교인의 사랑을 회상하고 그들이 거짓 교사의 그릇된 가르침에서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1. 넘쳤던 교인의 사랑(14-15절)
바울의 육체 안에 있는 연약함으로 갈라디아교인들이 시험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바울을 버리지 않고 따랐음에 감사하였습니다. 바울의 질병은 보는 사람이 시험에 들 정도로 심각하여 복음을 전하는데 장애가 됨에도 갈라디아교인들은 육체적 질병에 상관하지 않고 바울은 진심으로 환대하고 극진히 영접하였습니다.
바울은 애정과 사랑이 넘쳤던 기억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갈라디아교인입니다. 복은 축복이란 뜻과 더불어 행복, 기쁨 등의 다양한 의미로 바울과 함께 했던 행복한 관계로 아름다웠던 관계를 왜 잃어버렸느냐며 다시 회복하라고 역설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과거 갈리디아교인이 바울을 위해서라면 눈이라도 빼어줄만큼 바울을 존경하고 사랑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헌신적이었다고 합니다.

2. 잘못된 현실(16-18절)
과거 헌신적인 사랑이었음에도 분위기가 바뀌어 거짓교사들에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질책을 합니다. 참된 말이 과거 바울이 전했던 복음보다 바울과 갈라디아 교인관계가 넘치는 사랑과 애정으로 원수가 되기 위함인 줄 아느냐라는 반어법을 사용하여 진리에서 떠나지 말고 믿음을 지킬 것을 강권합니다. 참된 말을 진실하게 한다는 의미와 거룩한 삶과 하나님의 진리를 열심히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심내는 것은 매우 깊은 관심을 갖는다는 가치 중립적으로 거짓교사의 의도를 파악못한 결과입니다. 바울은 거짓교사들의 의도를 좋은 뜻이 아니라 이간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이간은 단체 혹은 구성원과 교제를 금지시키거나 소속에서 배제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갈라디아 교인을 현혹하여 바울이 전한 복음과 신앙 공동체로부터 제외시키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열심을 낸 것은 좋은 뜻이 아니었지만 바울의 열심은 갈라디아 교인에 초점을 맞추고 좋은 뜻과 좋은 일에 열심을 낸 것은 율법주의자 열심과 다른 방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신앙 회복을 호소(19-20절)
바울에게 특별한 의미로 나의 자녀들아는 어린아이라는 의미와 전혀 다른 의미로 특별한 호칭입니다. 영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아이가 아니라 자녀는 혈육관계를 의미하는 자녀로 관심과 양육하였습니다. 복음 안에서 깊은 관심과 영적 앵육을 전제한 표현이기에 헌신적인 수고와 깊은 애정이 담긴 호칭입니다. 바울의 수고가 얼마나 큰지를 표현하는 말로 이제 해산하는 고통을 감수하려고 한다는 다짐입니다.
고통의 대가를 치르면 갈라디아교인이 율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라는 목표까지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고난을 받는 것 역시 그리스도를 삶의 주관자로 삼음으로 그리스도를 담아간다는 것입니다.

거짓교사들에게 잘못된 방향으로 끌려가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신앙 성숙을 바라는 호소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과 함께 있고 싶어할 뿐 아니라 강경한 어조에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으로 직접 만나 자신의 뜻을 전달하면 보다 부드럽고 온화한 어조로 가르침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고백하며 나가는 오늘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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