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2024년 08월 18일 "검을 가지신 이가" (요한계시록 2:12-17)

관리자
2024.08.18 09:37 17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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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가지신 이가" (요한계시록 2:12-17)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버가모는 양피지라는 말처럼 양피지를 책 재료로 사용하여 20만권의 장서를 갖춘 도서관이 있는 도시로 서머나에서 104km 떨어진 내륙으로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통요지로 상업과 무역 발달하였습니다. 지형상 언덕위에 세워진 도시는 신전과 왕궁이 들어섰고 그에 따른 우상 숭배와 이단이 넘쳤기에 날선 검을 판단하시는 에수님입니다. 오늘 버가모교회와 우리 교들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그리스도(12절)
지리적으로 언덕위에 세워진 도시로 로마 여신 신전이 건축되면서 여러 신전과 왕궁이 있었습니다. 버가모교회는 일찍부터 만들어진 황제숭배와 우상숭배를 강요받았고 이단에 노출되어 좌우 날선 검을 가진 그리스도는 우상과 이단이 난무하는 버가모 지역에 심판하실 이는 당연합니다.

2. 칭찬과 책망(13-16절)
버가모교회 장소가 이교적 상황과 우상숭배에도 떠나지 않고 계속 사는지를 알고 계시는 예수님입니다. 사탄의 권좌는 하나님 보좌를 연상시키지만 사탄이나 왕이나 심판자의 권세를 떨치고 있는 버가모교회가 안디바의 순교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켰음에도 책망할 것이 있는 것은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 네게는 버가모교회안인 너희 가운데 순교자와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 제물을 먹게 하였고 행음하게 한 일입니다. 사냥은 발람 교훈과 그것을 따랐던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과 행음으로 심판하는 것으로 발람의 교휸이 이스라엘에 초래한 결과가 긴 세월이 흐른 후 영적 타락을 의미하는 속담처럼 내려옵니다. 안디바와 세상에 비타협적인 그리스도인이 있고 발람과 교훈에 동조하는 타협적인 그리스도인이 있는 것입니다.
발람 교훈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적으로 타락시킨 것처럼 니골라당 교훈을 지키는 자들은 발람 교훈을 지키는 세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단사설로 정통 신앙을 왜곡하는 니골라당이기 때문입니다.
속히는 자신들의 세대가 지나지 않아 재림이 실현될 것을 믿었지만 아무 일도 없자 재림과 종말에 대한 지연으로 의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박해가 닥쳐오자 신앙에 회의를 가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교회 내부에 존재하는 사악한 발람 교훈인 니골라당 교훈과 투쟁하시는 것으로 예시합니다. 예수님 말씀은 교회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용이면서 교회를 속이는 자를 위하여 군사용 무기입니다.

3. 이기는 자(17절)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하고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를 주시는 것은 메시야가 도래하여 새 예루살렘을 건설할 때 감추어진 만나가 발견될 것을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흰돌은 만나와 비슷하여 사용된 상징으로 투표에도 사용되는 크기가 작은 조약돌입니다. 이단사설과 그것을 사주하는 사단과 종말론적인 전투에서 승리한 교회에게 주어지는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선명한 기준이 필요한 것은 우리의 외형적인 삶과 더불어 자신만이 알고 있는 내부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가까이 가면서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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