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보호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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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3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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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을사(乙巳)년 새가 밝았습니다.
을사년은 1905년 일본과 맺은 조약이 생각납니다. 2차 한일협약인데 을사보호조약, 을사조약, 을사늑약으로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 때는 을사보호조약으로 배웠습니다. 일본과 협약을 맺으면서 우리나라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을 간섭하기 위하여 통감부를 설치한다는 한일협약이었기에 일본은 우리나라를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일본중심의 이름으로 을사보호조약으로 이름을 불렀습니다. 일본이 한일을 보호라는 명분으로 감추고 우리나라를 보호국으로 전락시켰던 것입니다.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이토 히로부미를 비난하고 조약의 무효를 알리는 장지연(張志淵)의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실었다가 무기 정간을 당했으며, ‘을씨년스럽다’는 말은 ‘을씨년’이 ‘을사년’에서 온 말로 당시 충격을 겨울로 접어드는 날씨로 비유한 것입니다.
해방이 되고 을사년이 돌아오는 1965년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해방되고 6.25사변으로 무너진 나라를 세우기에 급급한 시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제자리를 잡아가면서 명칭에 대한 의문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100년이 지난 2005년경 을사조약을 넘어 상호간 합의가 아닌 강제로 맺은 조약이라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사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을사년을 두 번째 맞이하는 긴 시간이 흐른 오늘 다시 돌아보면 을사보호조약이 을사조약으로 을사늑약으로 바뀐 것을 봅니다.
일본 중심의 을사보호조약이 있고, 우리나라 중심의 을사늑약이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용어를 을사조약으로 채택하고 을사늑약은 허용하는 것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의미적인 것으로 채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짧은 시간으로 짧은 호흡을 하는 것보다 멀리바라보는 긴 호흡으로 길게 생각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방어기재가 작동합니다. 사실 중심이라기보다 나 중심으로 합리화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합리화를 하는 나도 알고 상대방도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합리화 명분은 오래가지 않아 없어지고 사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을사년은 1905년 일본과 맺은 조약이 생각납니다. 2차 한일협약인데 을사보호조약, 을사조약, 을사늑약으로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 때는 을사보호조약으로 배웠습니다. 일본과 협약을 맺으면서 우리나라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을 간섭하기 위하여 통감부를 설치한다는 한일협약이었기에 일본은 우리나라를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일본중심의 이름으로 을사보호조약으로 이름을 불렀습니다. 일본이 한일을 보호라는 명분으로 감추고 우리나라를 보호국으로 전락시켰던 것입니다.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이토 히로부미를 비난하고 조약의 무효를 알리는 장지연(張志淵)의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실었다가 무기 정간을 당했으며, ‘을씨년스럽다’는 말은 ‘을씨년’이 ‘을사년’에서 온 말로 당시 충격을 겨울로 접어드는 날씨로 비유한 것입니다.
해방이 되고 을사년이 돌아오는 1965년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해방되고 6.25사변으로 무너진 나라를 세우기에 급급한 시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제자리를 잡아가면서 명칭에 대한 의문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100년이 지난 2005년경 을사조약을 넘어 상호간 합의가 아닌 강제로 맺은 조약이라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사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을사년을 두 번째 맞이하는 긴 시간이 흐른 오늘 다시 돌아보면 을사보호조약이 을사조약으로 을사늑약으로 바뀐 것을 봅니다.
일본 중심의 을사보호조약이 있고, 우리나라 중심의 을사늑약이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용어를 을사조약으로 채택하고 을사늑약은 허용하는 것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의미적인 것으로 채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짧은 시간으로 짧은 호흡을 하는 것보다 멀리바라보는 긴 호흡으로 길게 생각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방어기재가 작동합니다. 사실 중심이라기보다 나 중심으로 합리화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합리화를 하는 나도 알고 상대방도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합리화 명분은 오래가지 않아 없어지고 사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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